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2006 Europa

<Story 1 - Germany> 1. 출발 그리고 프랑크푸르트 도착

카이르 2013. 5. 10. 04:33

  


새벽 5시 30분. 그럴 줄 알았다. 비행기를 타면 생기는 징크스. 또 밤을 설쳤다.

일어나자마자 프랑크푸르트 숙소를 예약하고, 부랴부랴 짐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가는 날 걱정하는 엄마를 뒤로 한 채. 아빠 차 안에서 엄마, 정준이, 이모와 전화통화를 하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아빠도 그런 나의 곁을 한시도 떨어져있지 않는다.


9시 30분. 드디어 도쿄 발 비행기가 떠난다. 벌써 몇 번이나 하는 비행이지만, 이번 비행은 어느 때보다 긴장된다. 내 옆에는 유럽으로 떠나는 한국인들이 있었지만, 나와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빼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다만 그들은 나 홀로 50일간 여행을 간다고 하자, 대단하다고 한다. 감탄할 일만 있었으면 좋겠지만, 난 긴장감에 미칠 지경이었다. 처음으로 현지에서 준비되지 않은 채 홀로 하는 여행이니, 지금부터 나는 숙소, 밥, 루트, 모든 것을 나 혼자 결정해야만 한다. 여태껏 나는 아무것도 혼자 해낸 적이 없으니, 50일간의 나의 모든 것이 밝지만은 않다. 겉으로는 실실 거리고 있지만, 그런 미소 따위로 나의 긴장감의 3분의 1도 줄일 수 없었다.


11시 30분. 도착하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본의 전화비는 너무 비싸기 때문에 한국에서 30분이나 하는 무료통화권은 4분으로 줄어들고 만다. 시간적 여유와 심적 여유가 없어 기어코 엄마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앞으로 50일간은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할 텐데. 미안, 미안, 정말 미안해 엄마.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나서, 긴장이 약간 풀려 지치고 말았다. 지친 몸을 이끌고 탑승구 근처 소파에 주저 앉아버렸다. 내 옆에 나와 마찬가지로 약간은 루즈해 보이는 한국인 소녀가 보인다. 이경이. 그녀는 놀랍게도 프랑크푸르트도 향하고 숙소까지 같다. 유난히 프랑크푸르트 행 게이트에는 금발의 푸른 눈을 한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 와중에 만난 이경이는 아무리 내가 이질적인 공간에 있어도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1시 30분에 출발했어야 할 비행기는 15분이나 늦어지고 말았다. 좌석을 찾아 앉으니, 내 옆 좌석 두 개가 비어있다. 널찍하다. 하지만 자신의 뒷자리에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안 일본인 아줌마가 내게 냉큼 앉으신다. JAL을 타면 발생하는 일. 일본인 아줌마들은 영어를 정말 한 개도 못한다. 하지만 승무원들은 영어를 잘한다. 그들에게 양해를 구할 일, 혹은 부탁할 일이 생긴다면 난 같은 일본인에게 영어와 일본어로 동시에 말한다. 내가 일본어를 할 줄 안다는 걸 알아서 그런 걸까? 승무원들이 어느 때보다 친절하다. 어떻게 생각하든 프랑크푸르트까지는 편하게 갔다.


프랑크푸르트에서 내려, 짐을 찾으려고 하자, 짐이 걸려 조금 늦게 나온다고 한다. 나와 이경이는 20분간 기다려야 했다. 체크인 시간도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예상 밖의 기다림은 두려움과 짜증으로 변해버린다. 짐을 찾고, 한국인 유학생과 친절한 함부르크 아저씨의 도움으로 S반을 무사히 탔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중앙역까지는 고작 10분이 걸릴 뿐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시간인데, 중앙역에 내리자마자 모든 게 당황스럽다. 카이저 슈트라세에 있는 숙소를 찾기 위해 이사람 저 사람 붙잡고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은 친절하게 으슥한 포르노 샵 거리로 데려다 주고, 또 다른 사람에게 물어봤는데, 친절하게 안내를 해준 후, 자신들의 슈퍼를 광고한다. 그렇게 찾은 숙소는 중앙역에서 직진 50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리셉션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하자, 친절하고 잘생긴 스태프가 나와 이경이를 한방에 넣어주려고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메세기간이라, 그 시도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깐깐한 독일 사람이라도 여행객들에 대한 배려는, 오랜 비행에 지쳐버린 두 명의 여행자들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결국 다른 방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따뜻해진 채로 방안으로 들어갔다. 내 룸메이트는 3명. 방안에 들어가자 셋 다 스페인어로 얘기 한다. 나는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들의 대화에는 낄 수 없었다. 결국 이경이의 방을 찾아갔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인형같이 예쁜 여자와 인사를 나누었다.


“난 루마니아 출신이야.”

“루마니아?”

“응, 루마니아에 대해 알고 있어?”

“아, 내 친구가 지금 루마니아에서 여행 중이야.”

갑자기 밀려오는 외로움과 그리움. 막 타지에 왔을 뿐인데, 갑자기 한국에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난다. 내일 아침이면 새로운 것들이 한 번에 들이닥칠 텐데. 과연 나는 새로운 기억들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걸까? 






------------------------------------------------------------------------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여행기로 인사드리네요. 

이 여행기는 2006년 1월부터 2월 사이에 갔다 온 유럽 여행기입니다. 2006년에 네이버 유럽여행 카페 <유랑>에 연재된 적도 있어요. 


뭐 예전 여행기를 찾아보셔도 되고요, 

전 가깜 추억팔이하려고 올리려고 합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