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벗어났을 때.... /2006 Europa

<Story 1 - Germany> 8. 시간이 멈추다

카이르 2013. 5. 19. 20:01


안개가 끼어, 앞이 흐리게 보이는 길. 약간 습기가 찬 버스 정류장의 유리는 뿌옇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이어폰을 꽃고, 정류장에 기대어 이 곳 저 곳 살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까만 머리카락, 까만 눈을 하는 동양인 소녀가 보인다. 나는 씨익 웃으며 물었다. "한국 사람이세요?"

처음에 그녀는 약간 놀라더니만, 인사한다. 버스를 타고 이야기를 했더니, 그녀의 이름은 슬기. 나랑 동갑이다. 우리는 곧 말을 놓고 여행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지금 프랑크푸르트로 가는 길이고, 버스가 늦어 아무래도 기차를 훨씬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슈투트가르트로 갈 생각이고, 나 역시 기차가 늦어질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동감적인 상황에 당연히 말은 더 잘 통했다.



하이델베르크 역으로 갔더니, 우리가 타려던 기차는 놓쳤지만, 다른 기차가 있었다. 다행이다... 물론 내 기차는 약간 늦은 RE였지만, 관계없었다. 그녀와 화이팅을 외치고, 나는 슈투트가르트로 향하였다. 독일은 기차의 종류가 다양하다. 새마을 호처럼 초고속 열차인 ICEIC도 있고, 지역 열차인 RE도 있다. 원래 하이델베르크에서 슈투트가르트는 1시간 거리지만, RE를 타니 1시간 반이 더 걸린 것 같다.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하자마자, 튀빙엔으로 갈 열차를 찾았다. 하지만 배에서 꼬르륵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역 매점을 서성이다, 이쁜 가게를 발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하는 Well-Being빵이 파는 곳. 주인아줌마가 시식하라고 주신다. 잼도 발라먹고... 맛있게 먹고, 과자처럼 생긴 것을 사 갖고 기차를 탔다.




튀빙엔으로 향하는 RE... 밖으로 보이는 풍경도 이쁘다. 아마도 튀빙엔도 이렇게 이쁠 것이다.



튀빙엔에 도착했다. 아담한 튀빙엔 역에서 나오자마자 이쁜 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숨을 쉬어도, 그 소리가 다 들릴 것 같이 조용한 곳. 외국인도 별로 없고, 하이델베르크나 프라이부르크처럼 대학도시인데도 학생들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일요일이라 상점도 문을 닫고... 인포도 문을 닫아, 내 손에는 지도가 없다. 론니 플래닛에서도 튀빙엔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에, 나는 그저 감으로 길을 걸어야만 했다. 하지만 튀빙엔 자체가 워낙 작은 도시기에... 어딜 가든 좋다.


언덕으로 따라 올라가니 성당 건물이 보인다. 미사라도 있을 법 한다. 조용하다. 스탠드글라스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만이 성당 안을 가로지를 뿐이다. 성당에서 나와 길을 따라 호엔 튀빙엔 성으로 올라갔다. 성 아래에는 장난감 같은 튀빙엔 전경이 보인다. 약간의 눈이 쌓인 흔적이 남아있는 전경은 꼭 내가 장난감 나라의 왕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성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걸었다. 계속 길을 걸었지만, 역은 나올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 찾아 돌아가야 하는데... 쉽게 길을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조깅하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었다. 외국인도 별로 없지만, 외국인들을 보고 놀라지 않는 그들...그들의 친절함 탓에, 나는 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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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여행기는 2006년에 네이버 카페 <유랑>에 연재되었습니다. 유랑에서 '카이르'라는 닉네임으로 검색하시면, 이미 올려진 모든 글들 보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보셔도 되고요. 


사진의 배열은 종종 작가의 의도에 따라 빠지거나 순서가 바뀐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