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유로 샵에 가기 전에 우리 방에 있던 소녀와 마주쳤다. 나는 그녀에게 오늘 시간이 된다면 밤에 이야기를 나누자고 제안했다. 그러자 그녀도 흔쾌하게 승낙했다. 내가 숙소로 돌아오는 시간은 오후 7시. 내가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가 돌아온다.
그녀의 이름은 미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이며, 나와 동갑이다. 나는 어제 그녀가 스페인어로 유창하게 말해, 스페인 사람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는 외국어를 배우는 걸 좋아하고, 어제 멕시코 사람들과의 대화는 자신의 스페인어를 늘리는 데 유익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녀도 종종 내가 독일어를 말하는 걸 보고, 독어가 편하냐고 묻는다. 하지만 난 가끔 헷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영어가 조금 더 편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들의 대화는 영어로 진행하기로 했다.
그녀는 여행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프랑크푸르트에서는 3일 동안 묵을 거지만 유럽여행을 하는 것보다 아프리카 쪽을 여행한 후, 오스트레일리아로 돌아갈 거라고 한다. 나는 한국에 관해 이야기를 하고 미카는 자신의 여행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곧 우리들의 이야기는 남자의 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동양남자들이 서양여자들을 보는 시선, 그리고 서양남자들이 동양 여자들을 바라보는 시선. 그 시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동서양의 남자들은 서로 다른 문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거의 비슷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왜 그럴까?'라는 질문에는 답하지 못했지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집에서 가져온 한국 음식을 먹으러 가자고 말하고, 화장실에 잠깐 다녀오자, 아까 방에서 자고 있던 소년이 깨어났다. 미카는 내게 그가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가자고 했다고 말해준다. 나는 햇반과 소고기 고추장, 김, 참치를 들고 그들과 함께 바로 내려갔다. 이름은 야첵(이름이 헷갈려 나중에 두 번 물어봤어야 했다), 폴란드 소년이다. 18살. 그는 미국에 있는 자신의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한다. 미카가 내게 먼저 시범을 보이라고 한다. 사실 햇반에 고추장을 듬뿍 얹고 비벼 먹어야하는 데, 예전에 그렇게 했다가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 밥 위에 고추장과 참치를 조금씩 얹어 김과 함께 싸서 먹었다. 그러자 그들도 따라 한다. 어쩌면 이국적인 건데 거부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생각보다 잘 먹는다. 나중에는 젓가락질도 따라 한다.
미카와 야첵은 인터넷을 하러 갔고, 나는 먼저 방으로 올라왔다. 그러자 방에 다른 소녀가 보인다. 동양인이다. 동양인들끼리 만나면 상당히 재밌다. 일단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기에, 서로의 국적을 궁금해한다. 혹시나 같은 나라이면 정말 반갑지만 다른 나라라고 해도 서로의 비슷한 면 탓에 동질감을 느낀다. 이름은 치우칭, 타이완 출신이다. 스페인에서 인턴을 하고 내일 타이완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중국어와 한국어, 일본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날 밤은 나와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쓸쓸했지만, 오늘은 서로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도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편안해 진다. 난 그렇게 여행에서의 두 번째 밤을 맞이 하였다.
아침이다. 나는 오늘 프랑크푸르트를 떠난다. 나의 3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의 이메일을 교환하고 작별인사를 하였다. 서로 연락은 하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서로에 대한 기억을 잊지는 않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으로 가서 유레일 개시를 하고 하이델베르크로 향하는 열차를 탔다. 열차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과 같은 풍경이 지나간다. 내가 독일에 머무는 이유. 독일의 기차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꼭 그림과 같기도 하고 어쩌면 내가 옛날에 갖고 놀았을지도 모르는 장난감과 같다. 검표원이 유레일을 검표한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2개월짜리 패스인데 역 직원이 날짜를 한 달로 적어 넣었다. 당황스럽다. 그러자 검표원이 역에 가면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이런... 화가 난다. 날짜를 잘못 적은 역 직원한테 열 받는 건 둘째치고, 여행에서 했던 첫 번째 실수에 당황스럽고 내 자신에게 화가 난다.
하이델베르크 역에 도착하자마자 서비스 센터를 찾았다. 하지만 Reisezentrum으로 가라고 한다. 15분 정도 기다려 내 사정을 설명하였다. 그러자 역 직원은 내가 날짜를 적었냐고 물어본다. 솔직히 화가 났지만, 당신들이 찍어놓은 도장이 여기 있고, 만일 내가 적었더라면, 내가 일부러 적은 날짜를 썼겠냐고 말했다. 그러자 직원이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새로운 유레일 패스를 발급해 주었다. 원래를 프랑크푸르트 역 도장이 찍혀있어야 할 파란 유레일 패스는 사라지고 내 손에는 노란 유레일 패스가 쥐어져 있다.
역에서 나와 인포메이션에서 지도를 사고 유스호스텔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가 생각보다 늦게 오고, 나는 이미 30분도 넘게 서 있었다. 내 등에는 5킬로가 넘는 배낭이 메어져 있고, 내 손에는 10킬로짜리 캐리어가 있다. 힘이 쭉 빠진다.
예정시간에서 5분 정도 더 기다리자 버스가 보인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솔직히 덜 걸렸던 것 같다)가자 유스호스텔이 보인다. 자리에서 일어나 내리려고 하자 버스 문이 닫히려고 한다. 부랴부랴 짐을 대충 챙기고 버스에서 내렸다. 너무 급하게 내렸을까? 짐에게 밀려난다. 버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 쏠리는데 부끄럽다. 그리고 겨우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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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여행기는 네이버 카페 <유랑> 에 2006년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이 글은 유랑에서 '카이르'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고요, 이렇게 하나하나 올리는 대로 보셔도 됩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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