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크인을 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너무 힘들게 와서 일까? 방안에 내리쬐는 햇살이 긴장되었던 나의 마음을 풀어지게 한다. 이미 한 침대는 누군가의 공간이 되었고, 나는 다른 침대를 선택 한 후, 침대에 누워있었다. 정말 몸이 나른해져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하루 그냥 침대에 누워 있고 싶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샤워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다시 버스를 타고 비스마르크 광장에 도착했다. 하이델베르크는 두 번째다. 2년 전에 갔었지만, 하이델베르크는 조금 달라 보인다. 아마도 첫 번째 방문은 일요일에 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한산했 을테고, 오늘은 금요일이라 어느 때보다 분주할지도 모른다.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Hauptstrasse를 따라 걸었다. 대학 도시답게 서점도 많고, 가게의 물건들도 대부분 가격이 저렴하다. 조금 더 걷자 선제후 박물관이 보인다.
난 저번에 선제후 박물관에는 가지 못했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작은 정원과 박물관이 보인다. 겉은 아담해 보이는 데, 속은 꽤 크다.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목적을 갖게 마련이다. 시대별 미술을 전시해 놓은 곳도 있고, 한 시대의 작품을 전시해 놓은 곳도 있고, 장난감 박물관 등등 목적이 다양하다. 하지만 선제후 박물관은 다르다. 이 곳은 하이델베르크를 전시해 놓았다. 하이델베르크 성에서 나온 그림들, 도자기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 인의 뼈들... 정말 다양하다. 어쩌면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아마도 다양함도 적당했기 때문일 것이다.
선제후 박물관을 나오자 5시가 넘었다. 선제후 박물관이 너무 커서 그렇다기 보다 나올 때부터 늦게 나와서 시간이 그만큼 걸린 것이다. 조금 더 길을 따라 걷자 하이델베르크 대학 건물이 보인다. 이번에 여행 계획을 짤 때, 독일은 50일 중 20일을 머물 예정이다. 그 이유는 내 미래를 어쩌면 독일과 함께 할거라는 생각 탓이었다. 그리고 그 결정을 도와준 것은 하이델베르크였다. 늦은 시간이라 대학 박물관도 대학교 주위도 조용하다. 학생들이 많은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아마도 기회가 안된 것 같다. 여기서는 어떻게 공부를 할까 궁금했는데.
박물관 안을 잠깐 둘러보고 나오자 밖이 어둡다. 하지만 조금 더 걷기로 하였다. 어차피 내일 다시 이 곳을 찾겠지만, 꼭 가야 할 곳이 있다. 하이델베르크 성. 날이 어둡기 때문에 성은 조명을 켰는지 환하다. 올라가고 싶지만 이미 문을 닫았을 테다. 성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낯익은 말이 들린다. 한국인 여행객들. 하이델베르크 성이 보이는 앞에서 사진을 찍고, 바쁜 듯이 사라진다. 사진을 찍는 걸로 만족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호텔팩이나 단체여행을 왔을 것 같다. 시간이 촉박하니까 더 많은 것을 보고 갈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내가 유럽을 찾은 이유.
8시만 되어도 술집이나 바를 제외한 모든 상점이 문을 닫기 때문에, 독일의 밤은 한국의 밤보다 훨씬 어둡다. 그래서 될 수 있는 한 일찍 돌아가야만 했다. 아까 걸어온 길을 다시 걸었다. 상점들이 보인다. 크리스마스 마켓 상점도 보이고 도도하신 마네킹들이 있는 옷가게도 보인다. 그리고 초콜릿 파는 데도 보인다.
밖에서 보이는 초콜릿에 반해 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달콤해 보이는 초콜릿들이 나를 사 갖고 가라며 손짓하는 것 같다. 결국 그들 중에 하나를 선택해, 밖으로 나왔다. 하이델베르크의 밤은 내 손에 들려있는 초콜릿보다는 덜 달콤하지만 그래도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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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는 네이버 카페 유랑에서 2006년에 연재된 글입니다. 유랑에서 닉네임 검색으로 '카이르'를 검색하시면, 글이 나와요.
천천히 보고 싶다면 트윗과 페이스북으로 하루에 한 번 보내드리는 글을 읽으시면 됩니다.
아, 사진 배열이나 개수는 임의로 변경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읽어주세요.
P.S. 독일 대학에서 공부한 결과는... 그냥 공부도 사람하기에 달렸다. 그런데 확실히 세미나에 참여하려면 텍스트도 읽어야 하니까, 준비 시간이 길어질 수 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과제나 논문은 더 공부해야죠;;;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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