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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르의 일상

2011/01/19 나 좀 그냥 내버려두면 안되겠니?


Anne가 내게 평소처럼 안부를 물었다. 그 말에 난 무심코


"난 내 삶을 바꾸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되네."

라고 말해버렸다. 그리고 수업이 시작되고, 수업이 끝나고 나자 갑자기 Anne가 내게 묻는다.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너 그게 Philipp (고양이)하고 관계 있는 거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별 의미 없어." 

사실 별 의미가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어찌되었든 이번 크리스마스 휴가 때 '무언가 특별한' 일을 하지 못해서 짜증이 나기도 하고, 학교 생활 자체에도 특별히 변화가 없으니까. 그리고 내 머릿 속엔 전 날 느꼈던 '쪽팔림'에 신경 쓰고 있었다. 그래서 내 머릿속에는 philipp 고양이 군 따위는 없었다. 

가급적 녀석을 떠오르지 않으려고 노력 중이다. 그가 의도했던, 하지 않았던, 난 그에 의해서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으니까. 하지만 Anne는 이런 내 생각을 전혀 모르는지, 

"그럼, 그 날 왜 그런 거야?"
"뭐가?"
"흥미가 없다느니, 그런 말 너무 무례하잖아."
"아, 그 날." 

Anne는 내가 필립에가 그렇게 대했다는 것에 대해서 문제를 삼고 있었다. 이럴 땐 그냥 수긍하는 게 났다. 사실 그 말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까. 

"아, 그 날 내가 말이 심했다는 거 알아. 다음 부터는 안 그럴 게."
"아니, 원래 그렇게 말을 심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어. 하지만 넌 안 그러잖아. 왜 그랬냐고?"

그녀가 다시 묻는다. 

"필립하고 같이 있는 거 불편해."
"그럼, 더 좋게 말할 수 있잖아. 시간이 없다던가, 굳이 그렇게 말해야 할 이유가 있었냐고."

그녀가 다시 묻는다.

"필립이 날 어장관리하는 기분이 들어서."

라고 입에 맴돌았지만, '어장관리'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단어가 독일어로 존재하기나 하는 건가?) 그렇지만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보람이 느껴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인이 있는 남자가, 솔로인 여자에게,
그리고 자기를 좋아할 지도 모르는 여자에게,
물론 나 같은 경우는 그에게 더 이상 마음이 없는 상태에서,
이유 없이 잘 대해주고, 그녀한테 다른 남자가 생기는 것도 견제하는 것 같이 보이는 건,

그런 비슷한 상황들을 그녀에게 설명해 준 적이 있었고, 난 그것에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그런 감정을 절대로 공감하지 못했다. 그녀는 단지 그건 '그가 친절할 뿐이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갑자기 Ino가 대화에 끼는 바람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진 못했지만,
하루종일 그 일로 흥분해 있었다.

일단 그녀에게 '친절함'의 범위라는 게 어디까지 적용하는지 모르겠지만,

그걸 떠나서

괜히 내가 가해자가 된 기분이었다.

사실은 그 날 필립 고양이군과 학교에서 보았고, 그에게 피곤해서 어디론가 공부를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냥 '흥미'가 없다는 이야기는 그에게 전혀 상처받을 일이 아니었다.

막말로 내가

"니 꼴보기 싫어서, 거절하는 거야."

라고 말한 거 아니잖아..

나 지금 억울해..ㅜ